추억/나의 love story
그 아이 (여덟 번째 !)</FONT>
밤하늘7890
2016. 7. 14. 15:18
그 아이 (여덟 번째 !)
1975년 내 나이 스물셋 그 해 가을,
가을걷이를 마친 11월,
내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 아이와 나는 서로의 소식마저 끊겼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사느라
한동안 그 아이와의 추억마저도 잊고 살았다.
내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은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작은 외삼촌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돕는다고 해 봤자 100여명의 직원을 둔 구두 공장과
많은 양화점 중 가게 하나를 맡아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가게의 소재는 삼선교 이었고 가게이름은 신일양화점이었다.
구두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학창시절 서울 외가댁에 들렸을 때
외삼촌께서 내게 선물한 학생화가 처음 이었다.
그러니 구두에 대해 내가 뭘 알겠는가,
시골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서울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선배로부터 배워가며 다른 가게에서 모아온 재고를
정리 하는 것으로 처음을 시작했다.
그렇게 2달을 삼선교에서 보내고 다음해 1월
나는 동대문에 있는 유토피아 양화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 선배에게 본격적으로 구두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구두의 코 모양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랐고
끈을 꿰는 구멍에 따라서도 달리 불렀고
굽의 모양에 따라 높이에 따라 각기 달리 불렸다.
가죽의 종류만도 수도 없이 많았고 색깔은 왜 그리 다양한지 ……
선배로부터 계량지 위에 발을 그리고 치수를 재는 방법과
발의 형태에 따라 치수를 재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계량지위에 손님이 원하는 모양을 스케치하기 위해
열심히 구두를 그렸다. 그리고 손님을 대하는 기술도
선배의 손님 대하는 모습을 보고 터득해 나갔다.
이렇게 나는 시골 촌놈이 아닌 서울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내가 서울에 올라온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봄,
예비군 순회교육을 받기위해 고향을 방문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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