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동심이 낳은 참사)
새해가 시작 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지난달 8일
대모산 등산을 마치고 산 아래 공원을 지나고 있을 때 이었다.
10여명의 아이들이 공원 분수대 인공폭포 주위에서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노는 모습이 하도 즐겁고 예뻐 보여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이의 규칙은 인공구조물의 난간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고
구조물은 석조로 불규칙하게 이뤄져 자칫 다칠 수 있는 좀 위험한 곳이었다.
몇 학년이니? 가까이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비춰진다.
그런데 , 그런데 한 아이가 계속해서 술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위험한 구조물위를 원숭이처럼 날쌔게 잘도 도망 다니는데
이 아이는 소심한 성격 탓인지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아이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언제나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리더의 역할은 이럴 때 일부러 잡혀 술래가 되어
다른 아이로 술래로 체인지 해 주는 역할을 해서 놀이를 원만하게 해 줘야 한다.
우리 때는 그랬었다. 난 아이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여지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 규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내가 저 아이대신 술래 해도 되겠니? 아이들이 모두 찬성했다. 그러세요!
해서 난 술래가 되어 아이들을 잡으려고 아이들 뒤를 쫓았다.
내 앞에서 잡히기 일보직전의 아이가 폭포 옆 건너편으로 방향을 바꿔 건너뛰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상황이었다.
순간 나는 멈추려 해도 관성에 의해 멈춰 설 수가 없었고
폭포의 아래쪽으로는 갑자기 폭이 넓어져 균형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곤두박질치지 않으려면 하는 수 없이 뛰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어서 폭포는 가동되지 않았고 바닥은 돌이 깔려있었고 물은 없었다.
떨어질 때는 그 높이를 몰랐지만 그 후에 내가 떨어진 위를 보니 내 키를 훨씬 넘는 약 3m정도였다.
얼떨결에 일어서려는데 일어서 지질 않는다.
왼발과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괜찮으세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와중에도 무척 쪽팔렸다.
괜찮아! 조금 다친 것 같은데 괜찮을 거야!
아이들이 말한다. 저희들 때문에 미안해요!
아이들이 달려들어 부축해서 일으키려 한다.
나 혼자 일어 서 볼게! 가까스로 일어났으나 왼발은 도저히 발을 딛을 수가 없다.
허리도 통증이 심하다.
어찌 어찌해서 분수대를 나와 한발로 나와 보려 했으나 힘이 든다.
아이들이 말한다. 119에 전화 할까요?
아냐! 어디 가서 막대기 하나만 구해다 주겠니? 짚고 가 보게!
아이들이 공원을 돌아다니며 막대기 2개를 구해왔다.
됐다! 이제 나 혼자 갈 수 있으니 너희들은 이제 가 봐라!
아이들이 말한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응 걱정 마! 괜찮아!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이 자리를 떠난다.
술래를 하던 아이는 저 때문이라고 느꼈던지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정말 미안해요 저 때문에…….
라고 말하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맨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고 자리를 벗어났다.
한 발로 막대기를 짚고 큰길 까지 나갔으나
도저히 발의 통증과 허리의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인 다는 것은 무리였다.
공원 앞 큰길가 벤치에 걸터앉아 등산화를 벗었다.
복숭아뼈 아래가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119의 신세를 져야겠다는 판단이 선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전화기가 없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부탁했다.
제가 발을 다쳐서 움직일 수가 없는데요!
119에 전화를 해야겠는데 전화기를 안가지고 나와서 그러는데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