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7890
2008. 2. 9. 18:12

지난 8월 8일 길동 집을 출발한 시간이 밤 9시경 중부고속도로를 2시간여 달려 대전에서 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내려 가는 동안 전전날 제 작은 외삼촌과 엄마 누나와 먼저 도착해 보따리를 푼 우리집 네째딸의 아들인 초딩 조카녀석이 연신 폰을 때린다. 삼촌! 어디쯤이세요? 또 조금있다가 삼촌! 언제쯤 도착하세요? 안달이다. 사실은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랑 같이 내려가는 우리집 세째딸의 아들녀석인 같이 놀아줄 제 사촌 형을 기다리는 것이다.그렇게 1시간 30분여를 더 달려 시골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30분 동생이 준비한 포항에서 올라온 산 문어 데처 술 한잔 하는 동안 우리 형제들의 정도 밤도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8월9일(음력6월27일)우리 형제들이 해마다 여름휴가를 이날을 기준으로 해서 마추는 것은 이날이 우리 아버지의 기일이기 때문이다.70여 가구가 정겹게 모여사는 시골마을은 누가 들고 나는지 금방 다 알기 마련이다. 우리 형제들이 온 것을알고 앞집에서 뒷집에서 또다른 마을 이집 저집에서 감자도 한 소쿠리 애호박도 한 바가지 상치랑 풋고추도 비닐봉지에 담아 한 보따리씩 담아 해 먹어 보라며 가지고 오신다. 그러시고도 가시면서 우리집 텃밭에 고추랑 들깨랑 채소들 심어 놨으니 필요한 만큼 따다 먹으라신다.저녁때에는 메 담아 놓으라고 또 멥쌀을 앞집뒷집 그리고 친척들집에서 가지고 오셨다 (*참고로 제사상에 올리는 밥을 메라고 부른다.) 이것이 인심좋은 살맛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이다.
막내여동생의 막내 아들을 끝으로 조카들의 행진은 끝이 나고 누나의 아들의아들딸과 내 바로 밑 여동생의 아들의 아들까지 3대가 모두 모이면 와글 와글 시끌벅적 그야 말로 온 집안이 밤새 시끄럽고, 난 아이들을 통제 하느라 잔소리가 많아 진다. 베개위에 왜 올라 섰느냐? 이불은 왜 밟느냐? 뛰지마라 ! 창문위에 올라앉지마라 ! 장난 치지마라! 조용히 살던 나로선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 그래 이럴땐 술이 최고더라 동생들과 주안상 마주하고 앉아 평소에 안 먹던 술 몇잔에 기분이 많이 up된 나는 아이들의 시끄러움에 삼촌 뭐라 하신다.좀 조용히 놀아라 라는 저희 엄마의 꾸지람에 괜찮다 그래 뛰고 엎어지고 깨지고 지지고 볶고 너네들 놀고 싶은 대로 놀아라! 라고 말한다 . 엎어지거나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될대로 되라고 신경 안쓰니 참 그렇게 마음이 편한 걸...
자정이 가까워지면 준비해둔 제사음식들을 상위에 차리는 데 이것을 진설이라고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가르치셨다. 조,율,시,이(리)...과,채,탕,어,...어(동)육(서).(좌)편,(우)헤.... 어려서는 뭐 번거롭게 순서를 정해서 놓는지 늘 나는 그게 불만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들었지만 하도 들어서 이제는 내 입에서도 제사상만 보면 줄줄 순서가 외워진다. 제사상을 준비하면서 부터는 아이들도 조용해진다.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제기를 닦기도 하고 진설을 돕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각자 의관을 단정히 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제자리에 선다 두 아들을 필두로 사위들 딸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잔을 모두 올리고 첨작이 끝나면 내 어릴 때 생각이나 어린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너희들이 먹고 싶은 음식 하나씩 집어라 라고... 내 어릴 때 기억이란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제사보다는 제사가 끝나고 뭐 부터 먹을까 하고 차려진 제사 음식에 더 눈독을 들이던 기억이다. 음복을 끝으로 철상하여 커다란 양푼에 제사나물과 밥넣고 한 양푼 밥비벼 나눠먹는 맛은 뭐라고 표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우리 형제 조카들 그리고 그의 아들딸들(손자 손녀라는 표현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표현했음)까지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노라면 어느새 날은 새벽으로 치닫는다.
다음날 잘 만큼 자고 늦게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부터 물놀이 기구들을 챙겨 바람을 채워넣으며 빨리 가자고 성화다 지리산이 코앞인 풀냄새 흙냄새 물씬 풍기는 우리 집은 집을 나서 15-20분이면 뱀사골,백무동,육모정,정령치 등 지리산 북부지방을 어느 곳이나 갈 수 있어 남들처럼 따로 팬션이나 민박을 예약하지 않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도 돼 우리 형제들은 언제나 이용 할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이쪽계곡 내일은 저쪽계곡 그렇게 몇일을 시골집에서 보내고 12일 늦은 오후 돈이라고 불리는 파란 종이 한 장씩을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인사로 또 다른 나의 삶의 안식처로 향했다. 다음 11월16일(10월7일) 어머니 제사 때를 다시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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