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여행 · 등산

천은사 (잠시 속세를 떠나 그 신선함과 아름다움에 빠져본다.)

밤하늘7890 2013. 5. 27. 22:12

진한 아카시아꽃향내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어디로든 떠나야 할 것 같다. 5월 26일 고향집을 출발하여 인월-산내-뱀사골입구(반선)-달궁을 경유하여 성삼재가 가까워지자 한참 아래까지 도로의 가장자리에 주차된 차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여행객과 등산객들이 성삼재를 찾았는지 짐작케 한다. 감히 성삼재주차장에 주차할 엄두도 못 내고 저 아래 시암재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구불구불 구부러진 내리막을 내려가 천은사를 찾았다.

 

남방제일선찰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절은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다. 산문과 일주문을 지나 독특하고 운치 가득한 수홍문을 건너 절을 찾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하다. 지리산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 그리고 그 속에서 잠시 여유로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천은사의 원래 이름은 감로사였으나 절 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위 사진의 일주문에 쓰여진 글씨가 원교 이광사의 필체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울창한 송림에서 내 뿜는 신선한 공기가 온 몸을 휘감고 돈다.

 천은사로 가기위한 첫 관문인 저 돌다리 위에서 보면 다리 아래 저수지에 어린아이만한 커다란 잉어들이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보채듯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정말 크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건빵을 넙죽넙죽 받아 먹는 폼이 일품이다.

 

 

 

 절 입구 천왕문을 들어서면 양쪽에서 네명의 사천왕이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

 사찰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본다.

 

 

 

 

 

 

 

 대웅전을 옆에서 대웅전을 지키고 서있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가 정말 멋지다.

 사찰의 내부 모습들도 스케치 해 봤다.

 

 

 

 

 

 

 

괘불은 기우제, 영산제, 예수제, 수륙제 등 사찰에 대중이 많이 모이는 큰 집회 때 야외에 모셔지는 거대한 불화이다. 평소에는 법당 뒷편의 괘불함에 보관되며, 사용시에는 옥외의 괘불대에 걸려진다. 이러한 괘불의 조성은 불교국가 일반에 보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서역 등 몇몇 국가에서만 유행하였다. 지금까지 조사된 우리 나라의 괘불은 1600년대에서부터 1900년대에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70여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영남지역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는 세로360㎝, 가로277㎝ 크기의 삼베바탕에 짙은 녹색과 적색으로 채색되었는데, 그 구도와 기법등이 매우 훌륭하고 보존 상태가 좋아 현재 보물 제924호로 지정되었다. 제작은 1776년(영조52)에 극락보전을 지금의 모습으로 중수하면서 신암(信庵)스님을 비롯한 14명의 금어 스님이 조성하였다.

 

고려시대 천은사의 역사는 충렬왕 때 남방제일선원으로 불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고려 시대의 고승 나옹 혜근(懶翁 慧勤, 1320~1376)스님과 천은사가 관계된 유적, 유물이 있어 절의 연혁을 대략적으로 살피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준다. 나옹스님은 절의 뒷편 노고단 중턱에 있었던 상선암(上禪庵)에 머물며 수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스님이 지니고 있었던 원불(願佛)과 불감(佛龕)이 지금까지 절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