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에 드리운 시골의 밤풍경은
그 어느 유명한 화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이 아름다웠다.
이제는 걸을 만큼 걸었다.
둘만의 공간에 둘만이 오붓하게 앉아
밀회를 즐길만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어느 도회지의 공원처럼
따로 벤치가 마련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슬이 촉촉이 내려 젖어있는 풀밭도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이기에
이곳의 곳곳을 손바닥을 보듯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다.
야밤에 친구들과 야외전축을 들고 와서 밤새워 놀던
그리고 더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전쟁놀이하며 놀던
마을에서 조금 동떨어진 외진 곳이 있다.
놀기에도 좋고 밀회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
바로 산속의 무덤이 바로 그곳이다.
무덤은 대개 뒤는 막히고 앞은 탁 트여 경치가 좋고
잔디가 잘 가꿔져 어느 별장 못지않다.
더군다나 무덤 앞에 놓인 제단(상석)은
두 사람이 걸터앉기에 더없이 좋은 벤치가 된다.
마을주변 산속에는 이런 무덤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좋은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이슬이 촉촉이 내린 논둑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저 멀리 지리산의 야경이 어렴풋이 바라다 보이는
그러면서도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마을이 보이지 않은
밀회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은 이름 모를 어느 무덤의 제단에 오른
제물이 되어 제단에 나란히 걸터앉아 있었고.
제물이 되어 바라보는 들판과 좌측으로 솔비산,
그 옆 팔량치와 삼봉산 그리고 오른쪽 덕두봉과의 사이에
저 멀리 지리산이 어렴풋이 모습을 보이고
베틀바위와 황산이 펼쳐져 아름다운 야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야경도 잠시,
나는 어느새 야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수컷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